December 29, 2016

두 사람을 담은 단 하나의 예술작품, 웨딩 케이크

"신랑, 신부 입장!"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신랑, 신부, 부모님께 인사!"

모든 예식 순서가 끝나고 사회자의 목소리가 또 한 번 식장 안에 울려 퍼지자 하객들은 일제히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을 주고 받는다.

“그럼 이번엔 신랑신부의 케이크 커팅식이 있겠습니다.”

식장이 어두워지고 조명이 두 사람만을 비춘다. 산뜻한 배경음악이 울려퍼지고 하나의 칼을 잡은 신랑신부가 함께 케이크를 바라보며 그 위로 칼날을 사뿐히 내린다. 

 

피로연에서 하객들의 눈길을 가장 끄는 것은 신부만큼이나 화려하게 장식된 '웨딩 케이크'이다.
서양식 결혼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징물이기도 한 웨딩 케이크는 드레스와 반지만큼이나 결혼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결혼을 축복하고 다산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웨딩 케이크는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 이번 스토리에서는 결혼식에서 늘 보아왔지만 잘 알지 못했던 웨딩 케이크의 재미있는 유래와 의미, 그리고 예술성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웨딩 케이크의 시작은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을 신성시하던 그때에는 신랑 집의 불을 이용해 만든 여러 겹으로 만든 롤 모양의 빵을 신부가 먹음으로써 신랑 집의 새로운 사람으로 인정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웨딩 케이크를 축하선물로 얌전히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잘게 부스러뜨려 신부의 머리 위에 뿌리기도 하고, 결혼식 하객들이 신랑・신부에게 던져주는 형식이었다. 빵은 대지와 태양의 힘을 받은 곡식으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깊은 뜻이 있었기에 신부와 신랑은 하객들이 던져주는 케이크를 받아먹을 수밖에 없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때부터 결혼식은 신랑・신부만에게만 특별한 날이 아닌 하객 모두가 함께 즐기는 잔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 중세시대 때는 번이나 롤, 스콘, 비스킷 등 밀가루로 구울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모아 차곡차곡 최대한 높이 쌓은 뒤 신랑・신부가 그 위로 키스를 하게 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 '번의 장벽'을 넘어 무사히 키스에 성공하면 다산과 건강,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속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17세기, 다소 아름답지 않은 모습의 과자 더미와 함께 있는 신랑과 신부의 모습을 보고 측은하다는 생각을 가진 프랑스의 천재 제빵사, 마리 앙투안 카렘(Marie-Antoine Carême)은 프랑스어로 '입안에서 바삭거린다' 라는 뜻의 새로운 형태의 케이크, '크로캉부슈(Croquembouche)'를 개발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형태를 유지한 상태로 높이 쌓을까 고민하던 그는 아무렇게나 과자를 쌓는 대신 처음부터 피라미드 형식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으로 높이 쌓아 캐러멜을 덧씌워 굳히고 그 위를 장식한 '피에스몽테(pièce montée, 프루트 케이크를 쌓아 올려 장식한 케이크)'를 만든다.
1) 크로캉부슈(Croquembouch)  /  2, 3) (앙투안 카렘의) '피에스몽테' 스케치

 
 
 
 

(왼)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 로얄 웨딩 케이크. 1840.   /  (오)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의 결혼식 로얄 웨딩 케이크. 1858.

크로캉부슈 형태의 웨딩 케이크는 이전보다 한층 더 섬세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그러기 위해선 제빵사들에게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였으며 이러한 도전의식은 웨딩 케이크 개발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세를 거쳐 계몽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유럽은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나라들과 교역을 하면서 신흥 부국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많은 신흥 부국들 가운데서 영국은 단연 독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의 신흥 부유층들은 삶의 방식에서도 풍요의 혜택을 다양한 방법으로 누리게 되었다. 부자들은 자신 삶의 방식이 타인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잘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로 결혼식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웨딩 케이크 또한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바로 '흰색' 웨딩 케이크가 탄생된 것이다. 

흔히 많은 사람이 흰 백색의 웨딩 케이크의 탄생이 빅토리아 여왕 보위에 오르기 직전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백색의 웨딩 케이크는 이전부터 존재했다. 16세기엔 설탕이 왕실 전유물, 금보다 비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어졌기에 귀족을 제외한 서민들은 '라드(돼지기름)'를 사용했다. 냉장 기술이 부족하고 밀봉이 여의치 않아 미리 만들어둔 케이크에 표면이 마르지 않도록 라드를 두껍게 발라 먹기 직전에 라드를 긁어내고 먹었다. 

반면, 영국 왕실 귀족들은 그들의 권위와 부를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고운 설탕'으로 아이싱한 웨딩 케이크를 택한다. 그들이 사용한 웨딩 케이크는 기존의 라드를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순결한 결혼식'을 표현하고자 설탕을 입힌 순백의 웨딩 케이크였다. 설탕으로 아이싱한 케이크는 라드로 만든 케이크보다 더 하얬다. 설탕을 두껍게 입힌 웨딩 케이크는 매우 딱딱했고, 신부 혼자 힘으로는 잘리지 않아 신랑 신부가 함께 케이크를 자르는 행위가 이때부터 생기게 되었다. 신랑신부가 함께하는 첫 공동작업이라는 것에 큰 의미가 부여된다.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웨딩 케이크에는 더욱 다양한 의미들이 더해졌다. 17세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3단 케이크는 아래에서부터 과거, 현재, 미래라는 의미를 담는다. 그래서 맨 아랫단은 피로연의 손님들에게 두 번째 단은 예식에 참석하지 못한 지인들에게,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보관해뒀다가 처음 시작할 때의 사랑을 되짚는다는 의미로 부부의 결혼 1주년 때 꺼내 먹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장기간 보관이 가능했던 이유는 웨딩케이크 안에 들어가는 견과류를 술에 오랫동안 재웠다가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 로얄 웨딩 케이크. 2011.

2011년 영국, 케이크 디자인 역사에 길이길이 회자될 중요한 작품이 탄생한다.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웨딩 케이크가 바로 그것이다. 영국의 쟁쟁한 여덟 명의 장인이 무려 5주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 웨딩 케이크는 한 조각에 840만 원에 팔릴 정도로 인기가 있었고,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케이크 겉을 꾸민 수많은 설탕 꽃 하나하나에도 모두 의미가 있다고 한다. 로얄 웨딩 케이크는 영국 디자인사에 길이 회자될 중요한 기념물이기에 로얄 웨딩에 쓰일 케이크 디자이너로 선정된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윌리엄 왕자의 로얄 웨딩 케이크 설탕 꽃들에 달린 의미

Rose(White) - National Symbol of England

Daffodil - National symbol of Wales, New Beginnings

Shamrock - National Symbol of Ireland 

Thistle - National Symbol of Scotland

Acorns, Oak Leaf - Strength, Endurance

Myrtle - Love

Ivy - Wedded Love, Marriage

Lily of the Valley - Sweetness, Humility

Rose(Bridal) - Happiness, Love

Sweet William - Grant Me One Smile

Honeysuckle - The Bond of Love

Apple Blossom - Preference, Good Fortune

White Heather - Protection, Wishes Will Come True 

Jasmine(White) - Amiability

Daisy - Innocence ,Beauty, Simplicity

Orange Blossom - Marriage, Eternal Love, Fruitfulness

Lavender - Ardent Attachment, Devotion, Success, Luck

 

윌리엄 케이트 부부가 하객들에게 답례로 보낸 웨딩 케이크와 카드 


이처럼 영원히 기억될 결혼식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이들이 많아지면서 요즘 웨딩 케이크를 포함한 '주문제작(Customized Cake)'을 전문적으로 하는 케이크 샵들이 많아졌다. 케이크 디자이너들은 꽃이 만개한 봄, 싱그러운 청록색 여름, 불같은 단풍과 낭만적으로 수놓은 코스모스의 가을, 바람이 빈 가지를 흔드는 세찬 겨울 등 계절마다 각기 다른 이름으로 각기 다른 색깔로 피어나는 꽃들을 주문자의 목적과 요구사항에 맞춰 웨딩 케이크 위에 재현에 낸다.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장식물을 만드는 대표적인 두 가지 방법은 '슈가 크래프트(Sugar Craft)'와 '버터크림'이다.  *제과제빵의 기본 원칙 - 먹을 수 있는 물질로만 장식해야 한다. 

1, 2) 슈가 크래프트로 만든 케이크   /  3, 4, 5) 버터크림으로 만든 케이크   / Cake Design by Aram Cake Boutique

'슈가 크래프트'란 설탕을 가루 형태로 만들어 찰흙처럼 반죽하고 식용 색소를 입힌 것으로 여러 가지 모양과 꽃등을 만든다. 그 후 꽃이 마르면 가루 색소를 위에 발라 명암을 더해준다. '버터크림'은 웨딩 케이크를 만드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이다. 어떤 형태의 웨딩 케이크를 만들던 우선 빵에 버터크림을 바르고 그 위에 장식을 올리기 때문이다. 버터크림은 달걀흰자, 설탕 그리고 버터를 사용하여 만들어지는데, 이는 온도에 따라 묽기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용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 그 후, 파이핑백에 넣어 짜면서 장식을 만든다. 슈가 크래프트는 버터크림보다 더 정교하고 현실적인 꽃과 장식품을 만들 수 있고, 반영구적으로 보관이 가능한 장점이 있지만, 손이 많이 가고 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 버터크림은 만든 장식은 먹을 수 있고, 한 번 만들어 놓은 버터크림에 탈만 바꿔 끼우면 다양한 모양의 장식을 손 쉽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웨딩 케이크는 비스킷이나 과자 더미의 투박했던 모습에서 흰 케이크로 변화된 이후, 각종 기법과 장식이 더해져 더욱 아름답고 화려한 형태로 발전되고 있다. (영상) 2014년에 열린 '디즈니 웨딩 엑스포'에서 디즈니는 새로운 창작물인 '케이크 프로젝션 맵핑'을 선보였다. 하얀 웨딩 케이크를 캔버스 삼아 프로젝션 이미지를 쏘아 올리며 웨딩 케이크를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사진) 또 지난 3월, 뉴욕 맨해튼 33번가에 위치한 갤러리의 Beauty and Beyond 전시회에서는 '보석'을 주제로 만든 한인 케이크 디자이너 송아람(CIA)씨의 웨딩 케이크가 전시되며, '조각품'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나기도 했다. 송아람 케이크 디자이너는 케이크를 만들 때면 항상 (케이크의)주인공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만든다고 이야기 했다.
두 사람의 특별한 순간을 가장 특별하게 빛내주는 단 하나의 작품, 웨딩 케이크 – 이제 웨딩 케이크는 우리에게 단순히 '먹는' 기쁨을 넘어선 그 이상의 감동과 가치를 선사하는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Kana Food Story" writes interesting food and art stories from Kana Culinary team.
<카나 푸드 스토리>는 카나 요리팀이 전하는 신비로운 '요리∙예술' 이야기입니다. 

Writers:  Seungkyu Moon  I  문승규 <seungkyu.kana@gmail.com>, Yein Kwak ㅣ 곽예인 <yein.kana@gmail.com>
Editor-in-chief:  Yein Kwak ㅣ 곽예인 <yein.ka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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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K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