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5, 2016

오감을 사로 잡는 즐거움, "식용 꽃"

[플레이팅] 가장 먼저, 메인 고기와 잘 어우러지는 퓌레(purée, 채소나 고기를 갈아서 체로 걸러 걸쭉하게 만든 음식)로 빈 접시 위에 베이스라인을 만들어준다. 메인 고기를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얹고, 주변엔 정교한 칼질로 완벽할 만큼이나 같은 크기로 잘라낸 각종 채소로 꾸며준다. '예쁜 이파리만 골라 딴 허브와 색색의 꽃'으로 플레이팅을 화려하게 마무리해준다.

고급 레스토랑의 셰프들이 우아한 요리접시의 마지막 손질을 위해 여러 종류의 꽃을 사용하고 있다. 수프에 떠있는 꽃, 샐러드에 뿌려진 꽃, 요리 접시나 디저트에 고즈넉하게 놓인 꽃 등의 '에디블 플라워(edible flower)'는 요리의 아름다움을 극대치로 끌어올리는 화룡정점 역할을 해낸다. 

많은 이가 식용 꽃의 근대화가 얼마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용 꽃 사용은 예전부터 인디언들이 사막에서 자라는 식물꽃을 일상적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대 로마시대와 중국, 인도,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1837-1901)부터 매우 인기가 있었다.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꽃을 이용하여 차, 떡, 술 등 다양한 음식을 먹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전통 음식 중에 찹쌀가루로 만든 떡 위에 계절꽃을 얹어 모양도 내고 맛도 내었던 화전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역시 음력 3월 3일, 삼월삼짇달에 해먹는 진달래화전이 있고, 국화꽃이 만발한 가을에 해먹는 국화화전도 있다. 그밖에도 계절에 따라 복숭아화전이나 매화화가 있으며, 화전 외에는 오미자즙에 진달래를 띄워먹는 진달래화채도 있다. 

근래에는 '웰빙'이 주목받고 꽃의 효능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식용 꽃을 찾는 이가 많아졌다. 우리나라에서도 꽃을 사용한 비빔밥, 쌈밥, 샐러드, 샌드위치, 튀김, 케익 등 다양한 형태의 요리가 개발되고 있다. 꽃 요리는 꽃에 함유된 비타민, 아미노산, 미네랄 등 다양한 영양소 섭취와 함께 꽃잎의 화려한 색과 고유의 은은한 향기로 먹는 이의 식욕을 자극하여 입맛을 돋우는데 효과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식용 꽃을 '바르게 사용하고 안전하게 먹는 법'이다. 식용 꽃이라 하더라도 꽃가루 등에 의한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암술, 수술, 꽃밤침은 제거하고 사용하여야 하며, 특히 진달래는 수술에 약한 독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꽃술을 제거하고 꽃잎만 물에 씻은 후에 섭취하여야 한다. 또 일반적으로 장식용 꽃은 농약 등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식용을 목적으로 따로 재배되는 꽃만 섭취할 수 있다. 꽃잎은 따서 바로 요리하는 것이 좋으나, 보관을 해야하는 경우에는 마르지 않도록 밀폐된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해야 고유의 색과 향을 오래 보존할 수 있다. 꽃잎차 등과 같이 장기간 보관을 위해 건조할 경우, 본연의 색을 최대한 살리려면 꽃잎을 연한 소금물(1%)로 살짝 씻어 펼쳐 놓고 서늘한 그늘에서 바짝 말려야한다. 강한 향과 신맛을 내는 국화나 민들레 등은 살짝 쪄서 연한 설탕물을 뿌려가며 말려야 맛이 부드러워진다.
식용 꽃을 접시 위에 올릴 때는, 요리접시가 단순한 것이어야 하고 너무 많은 여러 가지 꽃을 섞어 내지 말아야 보기에도 아름답고 맛도 즐길 수 있다. 요리접시에 장식용으로 놓더라도 뜨거운 열기가 꽃의 아름다움을 잃게 할 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꽃의 색과 외형에만 신경 쓰다가 정작 꽃과 다른 컴포넌트의 맛의 조화를 간과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한다.
이번 칼럼은 '식용 꽃의 종류와 올바른 섭취방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필자의 철저한 자료 조사와 개인적인 경험과 주관을 바탕으로 한다.) 제대로 알고 이용한다면 장식용으로의 역할 뿐 아니라 맛을 내는 식재료로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꽃 요리를 하거나 시식을 할 때는 아래의 사항들을 꼭! 참고하길 권장하는 바이다. '식용 꽃 사용 지침서'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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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식용 꽃 ]

국화(Chrysanthemum)
형형색색의 국화는 톡 쏘는 매운맛과
동시에 살짝 콜리플라워(꽃양배추)처럼
씁쓸한 맛이 나므로 여러 메인요리에
잘 어울리며, 차로 자주 이용되는 꽃이다.
무조건 꽃받침과 암/수술을 제거한 후
꽃잎만 이용해야한다.
 

라벤더(Lavender)
보랏빛의 용머리처럼 생긴 꽃이다. 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차로 우려서 많이
마신다. 하지만 달콤새콤한 맛이 있어
스프에 가니쉬로 얹거나 솔베와 같은
디저트에 얹으면 좋은 가니쉬가 된다.
 

금송화(Marigold)
이름처럼 금빛이 도는 주황색 꽃이다.
샤프론처럼 매콤씁쓸한 맛을 내기 때문에
샤프론 대신 요리에 사용할 수도 있으며
꽃잎만 사용한다. 살짝 새콤한 맛도
있으므로 샐러드로도 괜찮고, 샤프론 대신
금송화를 넣은 밥을 만들 때도 쓸 수 있다.
 

민들레(Dandelion)
어릴수록 달콤한 맛이 나고 완전히 자라면
너무 억세고 맛이 쓰다. 생으로 먹던
익혀먹던 쪄먹던 상관 없다. 다용도로
쓰일 수 있으며, 흔하게 볼 수 있다 해도
절대로 길거리에 있는 것은 채집해 먹으면
안된다. 필라프나 샐러드로 자주 쓰인다.
 

보라지(Borage)
파랗고 보란 빛을 내는 별모양의 꽃이다.
여름바다 느낌이 나는 오이향이 난다.
칵테일이나 디저트류에 가니쉬로
얹기 좋다. 무엇보다도 색과 모양이 예뻐서
맛과 무관하게 아무 디쉬에나
올라가는 꽃 중 하나이기도 하다.
 

봉선화(Impatiens)
손톱을 물들이는 걸로 유명한 꽃이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지만
식용으로 특별히 재배된 것이 아니면
절대로 채집해 먹으면 안된다.
달달한 맛을 지니고 있어 샐러드나
달달한 음료에 가니쉬로 얹으면 좋다.
 

선갈퀴(Sweet Woodruff)
달콤하면서 씁쓸한 풀향이 나면서 또
고소한 바닐라 맛이 난다. 피가 묽어지는
효과가 있어 과다복용시에는 일부
환자들에겐 위험하니 소량만
쓰는 것이 좋다.
 

장미(Rose)
대중적으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케이크
장식이든지 아이스크림 가니쉬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딸기와 청사과를
합친 듯 달콤새콤한 맛이 나며, 꽃받침은
매우 씁쓸한 맛을 주기에 꽃잎만 떼어내
사용하는 것이 좋다. 야생이 아닌
식용재배한 장미는 모두 식용이 가능하다.
크기에 따라 통째로 장식하거나, 꽃잎을
한잎 한잎 떼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제비꽃(Violets)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듯이 보라색의 대표
꽃이라고 볼 수 있다. 달콤하고 꽃향이
좋다. 보라지를 못 구할 때 대체품으로도
나쁘지 않다. 꽃잎만 따다 샐러드로
먹거나, 디저트에 장식하고 음료에
띄워 마시기도 한다. 
 

허니석클(Honeysuckle)
꽃잎으로 시럽을 만들 수도 있을 정도로,
꿀처럼 달콤한 맛이 난다. 솔베나 달콤한
디저트에 가니쉬로 올리면 잘 어울린다.
꽃만 식용으로 가능하며, 열매는 독성이
있어서 절대로 먹으면 안된다.

 

한련화(Nasturtium)
빨주노초 색 구분이 확실하고 꽃잎이 얇아
하늘하늘한 것이 특징인 꽃이다. 꽃잎은
물론 이파리도 마치 작은 연잎을 연상시켜
메인과 디저트에도 자주 쓰인다. 꽃잎은
달콤하며 물냉이(Watercress)처럼
매콤하다. 꽃잎, 줄기, 이파리까지 모두
식용으로 쓸 수 있는 식용꽃 중 하나이다.

팬지(Pansy)
근처 마트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식용꽃 중 하나이다. 보라, 하얀, 파랑,
노랑, 빨강 등 없는 색이 없을 정도로 색이
다양하다. 꽃잎만 먹을 땐 달콤하지만
꽃받침이랑 같이 먹으면 풀향이 강해서
음식 맛을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달콤한 샐러드부터 디저트까지
달콤한 메뉴와 잘 어울린다.

히비스커스(Hibiscus)
무궁화와 같은 과의 꽃이다.
색깔은 다양한데 주로 빨갛다.
크랜베리처럼 살짝 달콤하면서
새콤한 맛을 갖고 있다. 차로 자주
이용되며, 새콤한 맛 때문에 주로
비니그렛 베이스 샐러드나 식전 카나페에
쓰이기 좋다.
 

[ 과일 및 채소 식용꽃 ]

 

감귤류(Citrus)
감귤류의 대표적인 과일로는 귤, 오렌지,
레몬, 라임, 자몽, 금귤이 있다. 꽃잎이
하얗고, 과일처럼이나 꽃도 레몬처럼
새콤한 맛이 나기에 해산물을 플레이팅
하면서 레몬과 함께 곁들여도 괜찮다.
그렇다고 레몬을 대체하기엔 신맛이 모자란다.

서양무(Radish)
풍차모양처럼 루꼴라꽃과 닮았고 맛도
비슷해 서로 바꿔 사용해도 괜찮다. 꽃잎
끝이 보랏빛이 난다. 무처럼 약간 매콤한
맛이 나고 다른 식용꽃처럼 맛이 좋진
않다. 차라리 무순이 더 맛있다.
 

파속식물(Allium)
파속식물의 대표로 양파, 파, 마늘,
서양부추(Chive), 부추, 샬롯이 있다. 꽃의
크기가 작은데 츄파츕스처럼 동그랗게
꽃이 뭉터기로 피어 있어 몇 개씩만 뽑아서
음식 위에 흩뿌려주면 한 뭉치로도 꽤 많은
포션을 커버할 수 있어 좋다. 흰색도 있고
연보라색도 있다. 특별히 섬세한 음식에
은은하게 파향을 낼 때 좋고, 생으로
먹기에도 문제 없고, 양파나 마늘이
들어가는 모든 음식에 사용하기 좋다.
 

당귀(Angelica)
굉장히 크기가 작은 편이지만
마인드맵처럼 중앙으로부터 쭉쭉 뻗어
부케처럼 한 뭉치로 플레이팅하면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꽃이다. 흰색, 연보라색,
적핑크색으로 색이 다양하다.
펜넬(Fennel)꽃과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색이 노랗지 않다.
감초(Licorice)와 샐러리 같은 맛이
나기에 생선 요리와 잘 어우러진다.

루꼴라(Arugula)
십자 모양에 끝은 살짝 둥근, 마치 풍차를
연상시키는 모양의 꽃이다. 흰색,
아이보리색, 연보라색으로 색이 다양하다.
서양무(Radish)꽃과 생김새는 물론 맛도
비슷한 편이다. 루꼴라잎과 비슷하게
쿵쿵한 향과 살짝 톡 쏘는 맛에
샐러드에 자주 쓰인다.
 

호박꽃(Squash Blossom)
호박꽃은 못생김의 상징이지만, 실제로
장식용으로 썼을 땐 아름답고, 호박맛도
그대로 느껴져서 좋다. 다만 크기가
가니쉬로 쓰기엔 큰 편이라 생으로
먹기보단 오븐에 굽거나 튀겨 꽃 자체를
요리해서 먹는다. 호박스프 메뉴엔
가니쉬로 얹어도 괜찮다.

고수꽃(Cilantro)
흰색에 살짝 분홍빛이 돌고 요정의
날개처럼 아기자기하면서도 우아하다.
고수풀 자체 향이 은은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고수를 싫어한다면 고수꽃 또한
싫어할 것이다. 핫디쉬만 제외하곤
고수가 들어가는 모든 음식에
올라가면 식욕을 한층 돋구어줄 것이다.

바질꽃(Basil)
라벤더꽃과 비슷하게 생겼고, 꽃잎은
흰색과 보라색이다. 바질맛이 은은하게
느껴지며, 레몬과 민트 같은 싱그러움도
느낄 수 있다. 생으로 샐러드에 뿌려
먹거나, 파스타에 가니쉬로 얹어 먹기 좋다.

 

민트꽃(Mint)
민트보다 향이 약하기 때문에 민트향을
조금만 주고 싶을 때 쓰면 된다. 민트
베이스 칵테일 가니쉬로 최고며, 양고기
요리 가니쉬로 쓰기에도 좋다.

로즈마리꽃(Rosemary)
파랗고 보란 빛이 도는 용머리 같이 생긴
꽃이다. 로즈마리향이 나며 로즈마리가
들어가는 모든 요리에 가니쉬로 쓰기 좋다.

 

세이지꽃(Sage)
흔히 알고 있는 라벤더와 매우 흡사하게
생겼고, 보랏빛과 파란빛이 도는 꽃이다.
세이지향이 은은하게 난다.

 

마조람꽃(Marjoram)
마조람과 같은 맛이 나고, 오레가노보다
향이 좀 더 강하기 때문에 소스나 스프에
가니쉬로 얹어도 괜찮다.

 

오레가노꽃(Oregano)
마조람꽃과 완벽하다시피 똑같이 생겼고,
분홍빛의 작은 꽃이다. 오레가노향이
은은하게 나고, 샐러드에 같이 섞거나
토마토소스를 쓴 피자나 파스타에
가니쉬로 올려주면 좋다.

 

펜넬꽃(Fennel)
당귀처럼 작은 꽃뭉치들이 마인드맵처럼
쭉쭉 뻗어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색은
노랗고 감초맛이 난다. 메인이나 디저트나
무관하게 사용이 가능하다.
 

타임꽃(Thyme)
연보랏빛의 꽃잎 때문에 작은 진달래처럼
보이기도 한다. 타임향이 은은하게
느껴지고, 타임이 여러 메뉴에 다양하게
쓰이듯이 타임꽃 또한 대부분의 디쉬에
잘 어울린다. 특히나 레몬타임꽃을
사용하면 절대로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Kana Food Story" writes interesting food and art stories from Kana Culinary team.
<카나 푸드 스토리>는 카나 요리팀이 전하는 신비로운 '요리∙예술' 이야기입니다. 

Writer:  Yujoon Jang  I  장유준 <yujoon.kana@gmail.com>
Editor-in-chief:  Yein Kwak ㅣ 곽예인 <yein.kana@gmail.com>

Posted
AuthorKANA

December 29, 2016

두 사람을 담은 단 하나의 예술작품, 웨딩 케이크

"신랑, 신부 입장!"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신랑, 신부, 부모님께 인사!"

모든 예식 순서가 끝나고 사회자의 목소리가 또 한 번 식장 안에 울려 퍼지자 하객들은 일제히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을 주고 받는다.

“그럼 이번엔 신랑신부의 케이크 커팅식이 있겠습니다.”

식장이 어두워지고 조명이 두 사람만을 비춘다. 산뜻한 배경음악이 울려퍼지고 하나의 칼을 잡은 신랑신부가 함께 케이크를 바라보며 그 위로 칼날을 사뿐히 내린다. 

 

피로연에서 하객들의 눈길을 가장 끄는 것은 신부만큼이나 화려하게 장식된 '웨딩 케이크'이다.
서양식 결혼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징물이기도 한 웨딩 케이크는 드레스와 반지만큼이나 결혼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결혼을 축복하고 다산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웨딩 케이크는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 이번 스토리에서는 결혼식에서 늘 보아왔지만 잘 알지 못했던 웨딩 케이크의 재미있는 유래와 의미, 그리고 예술성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웨딩 케이크의 시작은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을 신성시하던 그때에는 신랑 집의 불을 이용해 만든 여러 겹으로 만든 롤 모양의 빵을 신부가 먹음으로써 신랑 집의 새로운 사람으로 인정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웨딩 케이크를 축하선물로 얌전히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잘게 부스러뜨려 신부의 머리 위에 뿌리기도 하고, 결혼식 하객들이 신랑・신부에게 던져주는 형식이었다. 빵은 대지와 태양의 힘을 받은 곡식으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깊은 뜻이 있었기에 신부와 신랑은 하객들이 던져주는 케이크를 받아먹을 수밖에 없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때부터 결혼식은 신랑・신부만에게만 특별한 날이 아닌 하객 모두가 함께 즐기는 잔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 중세시대 때는 번이나 롤, 스콘, 비스킷 등 밀가루로 구울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모아 차곡차곡 최대한 높이 쌓은 뒤 신랑・신부가 그 위로 키스를 하게 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 '번의 장벽'을 넘어 무사히 키스에 성공하면 다산과 건강,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속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17세기, 다소 아름답지 않은 모습의 과자 더미와 함께 있는 신랑과 신부의 모습을 보고 측은하다는 생각을 가진 프랑스의 천재 제빵사, 마리 앙투안 카렘(Marie-Antoine Carême)은 프랑스어로 '입안에서 바삭거린다' 라는 뜻의 새로운 형태의 케이크, '크로캉부슈(Croquembouche)'를 개발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형태를 유지한 상태로 높이 쌓을까 고민하던 그는 아무렇게나 과자를 쌓는 대신 처음부터 피라미드 형식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으로 높이 쌓아 캐러멜을 덧씌워 굳히고 그 위를 장식한 '피에스몽테(pièce montée, 프루트 케이크를 쌓아 올려 장식한 케이크)'를 만든다.
1) 크로캉부슈(Croquembouch)  /  2, 3) (앙투안 카렘의) '피에스몽테' 스케치

 
 
 
 

(왼)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 로얄 웨딩 케이크. 1840.   /  (오)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의 결혼식 로얄 웨딩 케이크. 1858.

크로캉부슈 형태의 웨딩 케이크는 이전보다 한층 더 섬세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그러기 위해선 제빵사들에게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였으며 이러한 도전의식은 웨딩 케이크 개발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세를 거쳐 계몽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유럽은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나라들과 교역을 하면서 신흥 부국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많은 신흥 부국들 가운데서 영국은 단연 독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의 신흥 부유층들은 삶의 방식에서도 풍요의 혜택을 다양한 방법으로 누리게 되었다. 부자들은 자신 삶의 방식이 타인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잘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로 결혼식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웨딩 케이크 또한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바로 '흰색' 웨딩 케이크가 탄생된 것이다. 

흔히 많은 사람이 흰 백색의 웨딩 케이크의 탄생이 빅토리아 여왕 보위에 오르기 직전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백색의 웨딩 케이크는 이전부터 존재했다. 16세기엔 설탕이 왕실 전유물, 금보다 비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어졌기에 귀족을 제외한 서민들은 '라드(돼지기름)'를 사용했다. 냉장 기술이 부족하고 밀봉이 여의치 않아 미리 만들어둔 케이크에 표면이 마르지 않도록 라드를 두껍게 발라 먹기 직전에 라드를 긁어내고 먹었다. 

반면, 영국 왕실 귀족들은 그들의 권위와 부를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고운 설탕'으로 아이싱한 웨딩 케이크를 택한다. 그들이 사용한 웨딩 케이크는 기존의 라드를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순결한 결혼식'을 표현하고자 설탕을 입힌 순백의 웨딩 케이크였다. 설탕으로 아이싱한 케이크는 라드로 만든 케이크보다 더 하얬다. 설탕을 두껍게 입힌 웨딩 케이크는 매우 딱딱했고, 신부 혼자 힘으로는 잘리지 않아 신랑 신부가 함께 케이크를 자르는 행위가 이때부터 생기게 되었다. 신랑신부가 함께하는 첫 공동작업이라는 것에 큰 의미가 부여된다.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웨딩 케이크에는 더욱 다양한 의미들이 더해졌다. 17세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3단 케이크는 아래에서부터 과거, 현재, 미래라는 의미를 담는다. 그래서 맨 아랫단은 피로연의 손님들에게 두 번째 단은 예식에 참석하지 못한 지인들에게,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보관해뒀다가 처음 시작할 때의 사랑을 되짚는다는 의미로 부부의 결혼 1주년 때 꺼내 먹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장기간 보관이 가능했던 이유는 웨딩케이크 안에 들어가는 견과류를 술에 오랫동안 재웠다가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 로얄 웨딩 케이크. 2011.

2011년 영국, 케이크 디자인 역사에 길이길이 회자될 중요한 작품이 탄생한다.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웨딩 케이크가 바로 그것이다. 영국의 쟁쟁한 여덟 명의 장인이 무려 5주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 웨딩 케이크는 한 조각에 840만 원에 팔릴 정도로 인기가 있었고,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케이크 겉을 꾸민 수많은 설탕 꽃 하나하나에도 모두 의미가 있다고 한다. 로얄 웨딩 케이크는 영국 디자인사에 길이 회자될 중요한 기념물이기에 로얄 웨딩에 쓰일 케이크 디자이너로 선정된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윌리엄 왕자의 로얄 웨딩 케이크 설탕 꽃들에 달린 의미

Rose(White) - National Symbol of England

Daffodil - National symbol of Wales, New Beginnings

Shamrock - National Symbol of Ireland 

Thistle - National Symbol of Scotland

Acorns, Oak Leaf - Strength, Endurance

Myrtle - Love

Ivy - Wedded Love, Marriage

Lily of the Valley - Sweetness, Humility

Rose(Bridal) - Happiness, Love

Sweet William - Grant Me One Smile

Honeysuckle - The Bond of Love

Apple Blossom - Preference, Good Fortune

White Heather - Protection, Wishes Will Come True 

Jasmine(White) - Amiability

Daisy - Innocence ,Beauty, Simplicity

Orange Blossom - Marriage, Eternal Love, Fruitfulness

Lavender - Ardent Attachment, Devotion, Success, Luck

 

윌리엄 케이트 부부가 하객들에게 답례로 보낸 웨딩 케이크와 카드 


이처럼 영원히 기억될 결혼식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이들이 많아지면서 요즘 웨딩 케이크를 포함한 '주문제작(Customized Cake)'을 전문적으로 하는 케이크 샵들이 많아졌다. 케이크 디자이너들은 꽃이 만개한 봄, 싱그러운 청록색 여름, 불같은 단풍과 낭만적으로 수놓은 코스모스의 가을, 바람이 빈 가지를 흔드는 세찬 겨울 등 계절마다 각기 다른 이름으로 각기 다른 색깔로 피어나는 꽃들을 주문자의 목적과 요구사항에 맞춰 웨딩 케이크 위에 재현에 낸다.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장식물을 만드는 대표적인 두 가지 방법은 '슈가 크래프트(Sugar Craft)'와 '버터크림'이다.  *제과제빵의 기본 원칙 - 먹을 수 있는 물질로만 장식해야 한다. 

1, 2) 슈가 크래프트로 만든 케이크   /  3, 4, 5) 버터크림으로 만든 케이크   / Cake Design by Aram Cake Boutique

'슈가 크래프트'란 설탕을 가루 형태로 만들어 찰흙처럼 반죽하고 식용 색소를 입힌 것으로 여러 가지 모양과 꽃등을 만든다. 그 후 꽃이 마르면 가루 색소를 위에 발라 명암을 더해준다. '버터크림'은 웨딩 케이크를 만드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이다. 어떤 형태의 웨딩 케이크를 만들던 우선 빵에 버터크림을 바르고 그 위에 장식을 올리기 때문이다. 버터크림은 달걀흰자, 설탕 그리고 버터를 사용하여 만들어지는데, 이는 온도에 따라 묽기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용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 그 후, 파이핑백에 넣어 짜면서 장식을 만든다. 슈가 크래프트는 버터크림보다 더 정교하고 현실적인 꽃과 장식품을 만들 수 있고, 반영구적으로 보관이 가능한 장점이 있지만, 손이 많이 가고 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 버터크림은 만든 장식은 먹을 수 있고, 한 번 만들어 놓은 버터크림에 탈만 바꿔 끼우면 다양한 모양의 장식을 손 쉽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웨딩 케이크는 비스킷이나 과자 더미의 투박했던 모습에서 흰 케이크로 변화된 이후, 각종 기법과 장식이 더해져 더욱 아름답고 화려한 형태로 발전되고 있다. (영상) 2014년에 열린 '디즈니 웨딩 엑스포'에서 디즈니는 새로운 창작물인 '케이크 프로젝션 맵핑'을 선보였다. 하얀 웨딩 케이크를 캔버스 삼아 프로젝션 이미지를 쏘아 올리며 웨딩 케이크를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사진) 또 지난 3월, 뉴욕 맨해튼 33번가에 위치한 갤러리의 Beauty and Beyond 전시회에서는 '보석'을 주제로 만든 한인 케이크 디자이너 송아람(CIA)씨의 웨딩 케이크가 전시되며, '조각품'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나기도 했다. 송아람 케이크 디자이너는 케이크를 만들 때면 항상 (케이크의)주인공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만든다고 이야기 했다.
두 사람의 특별한 순간을 가장 특별하게 빛내주는 단 하나의 작품, 웨딩 케이크 – 이제 웨딩 케이크는 우리에게 단순히 '먹는' 기쁨을 넘어선 그 이상의 감동과 가치를 선사하는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Kana Food Story" writes interesting food and art stories from Kana Culinary team.
<카나 푸드 스토리>는 카나 요리팀이 전하는 신비로운 '요리∙예술' 이야기입니다. 

Writers:  Seungkyu Moon  I  문승규 <seungkyu.kana@gmail.com>, Yein Kwak ㅣ 곽예인 <yein.kana@gmail.com>
Editor-in-chief:  Yein Kwak ㅣ 곽예인 <yein.ka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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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0, 2016

인공지능(AI) vs 요리사,
푸드테크(Food Tech) 전성시대 

올해 상반기를 가장 뜨겁게 달군 세간의 이슈는 상금 100만 미국 달러(약 11억 원)를 놓고 벌어진 인공지능과 인간 세기의 역사적인 대결, 알파고(AlphaGo) 대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의 바둑 대국이었다.
<*알파고(AlphaGo): 구글의 자회사이자 영국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 개발 회사인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가 개발한 최고 바둑 프로그램)>
첫 대국에 앞서 많은 이는 ‘이세돌 승리’를 예상하였지만, 알파고의 4승 1패로 최종적으로 알파고가 승리하는 결과를 거두었다. 현재,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은 바둑뿐 아니라, 기후변화 예측, 질병 진단 및 건강관리 등 여러 분야에 접목되어 다양하게 연구개발 중이다. 이처럼 인공기능 기술이 최근 몇 년 사이 급부상하고 있음에 따라 경제적, 사회적 효과에 대한 기대뿐 아니라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대체, 통제 불능 문제 등 사회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관련 논란 중 단연 최화두인 '일자리 문제'는 요식업계를 뒤흔들어놓고 있다. 인공기능 기술 발전으로 인해 20년 내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수많은 직종 중 '요리사'가 96%의 확률로 예측되었기 때문이다. 인공기능이 현시대의 요리사에게 끼치고 있는 긍적적∙부정적 영향. 이에 대한 오해와 진실 등 이번 카나 푸드 스토리에서는 현재 요리업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이슈, '푸드테크(Food Tech)'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사진) IBM Chef Watson with Bon Appétit beta

요식업계를 주목시킨 첫 고성능 인공지능 로봇은 IBM과 요리 잡지 Bon Appétit이 협업하여 제작한 '셰프 왓슨(Chef Watson)'이다.
<*본에피티(Bon Appétit): 1956년부터 발간된 미국의 음식&요리 월간지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와 독자 보유>

왓슨은 보통 과학자가 하루 5개씩 읽으면 38년이 걸릴 7만 개의 논문을 한 달 만에 분석하여 항암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 6개를 찾아내는 등 의료 분야에서 주되게 사용되어왔지만, 최근 '셰프 왓슨'이 개발되며 본격적으로 요식업계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셰프 왓슨은 단순히 요리 과정만 보여주는 것 아니라, 전혀 새로운 레시피를 직접 개발하고 제안하기까지 한다. 요리사가 수많은 조합을 시도하는 레시피 테스팅 과정이 없이 입력된 데이터만으로 번거로운 과정을 쉽게 구현해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재료의 조화, 영양 및 화학적 성분의 조합과 같은 광활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수한 레시피를 개발해낸다. 현재 IBM에서는 왓슨의 레시피를 이용한 푸드 트럭(사진)을 직접 운영 중이다. 
 

(영상) The Robotic Chef - Moley Robotics

런던의 로봇 회사 몰리 로보틱스(Moley Robotics)와 셰도우로보틱스(ShadowRobotics)가 공동으로 개발한 주방용 자동 조리 로봇 ‘몰리(Moley)’ 또한 큰 화제를 모았다. 몰리는 약 2,000가지 음식의 레시피를 내장하고 있으며, 사람의 손 구조를 모방하여 같은 크기로 제작되었으며, 사람이 요리하는 것과 같은 속도와 동작으로 정교하게 움직이며 요리를 해낸다. 실제로 사람의 개입 없이 직접 로봇이 수프를 만드는데 총 30분이 소요되었다.
 

(영상) 최첨단 기술과 함께 즐기는 초밥

이 밖에도 로봇 천국인 일본에 위치한 구라스시는 시간당 3500개의 초밥을 쥐는 스시 로봇을 도입해 체인점이 350개나 넘는 성공을 거두며 그야말로 미스터 '로봇' 초밥왕 시대를 구현해냈다. 스시 로봇이 인간 요리사보다 무려 5배 빠른 속도로 초밥을 만들기에 그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음식을 판매해 새로운 성공신화를 이루어냈다고 한다. 
 

(사진) 요리사가 요리하는 과정 (1, 2, 3, 4, 5)

"요리가 단순히 '기술'일까?"
우리는 이 질문에 "(요리사에게) 요리는 기술이 아닌 '예술'이다" 라고 답하고 싶다.
제아무리 뛰어난 고성능 인공지능 로봇이 빼어난 셰프의 레시피를 그대로 복사하고 흡사한 맛을 구현해낸다고 해서 ‘요리사'라 불릴 수는 없다. 요리사는 사람에게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오감을 만족하게 하는 그 이상의 가치와 감동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로봇은 정확히 예측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레시피를 만드는가 하면, 요리사는 순간의 실수나 찰나의 아이디어로 새로운 레시피나 요리를 창작해내는 경우가 있다. 세계적인 디저트, 퍼프 페이스트리(Puff Pastry)와 타르트(Tart)의 기초인 '퍼프 페이스트리 반죽'은 버터를 실수로 깜박 잊어 어쩔 수 없이 나중에 버터를 첨가하고 구워보니 나오게 된 형태이다. 이러한 발견은 데이터를 근거로 작동하는 기계는 할 수 없다. 

스시바와 같은 레스토랑에서는 손님과 요리사가 갖는 '의사소통'이 중요한 요리 과정으로 취급된다. 셰프와 직접 소통하며 즐거운 추억을 남기는 것이 방문 목적이 되기도 한다. 또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공장에서 찍어낸 빵들이 대부분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시대에도 많은 이가 '손수 만든' 빵을 먹기 위해 먼 여정도 마다치 않는다. '핸드메이드' 혹은 ‘수제’라는 단어가 소비자에게 큰 어필이 되는 이유는 이들이 찾는 맛의 가치가 다름 아닌 '정성'이기 때문이다.

또한, 로봇이 보편화되면 어느 레스토랑을 가도 비슷한 맛과 비슷한 품질로 인해 여러 음식점을 비교하며 다닐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또 굳이 같은 음식을 먹기 위해 레스토랑을 찾아 나설 필요성조차 없어질지 모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레스토랑마다 '차별성'을 지녀야 하는데 이것은 오로지 '요리사의 몫'이다. 기계는 한결같은 음식을 만들어 내놓겠지만, 요리사는 동일한 레시피할지라도 각자의 개성과 감각으로 저마다 다른 음식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기술과 예술이 적절히 융합될 때 비로소 우리에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미래가 그려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식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효율성'을 높이고 산업을 경제적으로 진보시킬 로봇들이 지속적으로 개발되어 현명하게 잘 사용된다면 인공지능은 요리사에게 결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닌 가장 좋은 도구가 될 것이다.

 

"Kana Food Story" writes interesting food and art stories from Kana Culinary team.
<카나 푸드 스토리>는 카나 요리팀이 전하는 신비로운 '요리∙예술' 이야기입니다. 

Writers: Nuri Choiㅣ 최누리 <choinuri.kana@gmail.com>, Serin Kim ㅣ 김세린 <serinkim.kana@gmail.com>

Editor-in-chief: Yein Kwak ㅣ 곽예인 <yein.ka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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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13, 2016

와인이라 불리우는 "예술", 샤토 무통 로쉴드(Chateau Mouton Rothschild) 

와인 페어링(Wine Pairing)이 없는 파인 다이닝–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와인 페어링은 레스토랑의 좋은 수입원이자 식재료만으로는 낼 수 없는 맛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맛을 구현해내며, 기존의 맛을 극대화할 수 있는 증폭제이다. 예전과 비교해, 요즘은 누구든 손쉽게 와인을 구할 수 있어 와인마니아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와인은 어느덧 친숙한 주류로 자리매김하였다.

와인 공부를 한번 시작하게 되면 품종부터 지역 및 와이너리의 특징 그리고 페어링까지 모두 배워가게 된다. 
와인 라벨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산지, 포도종, 빈티지 등이 적혀있어 와인의 특징과 상세 정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와인 라벨은 위에 기재한 것과 같은 단순한 정보만을 알려주지만, 일부 와인 라벨에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담겨있다는 사실! 

프랑스 5대 와인 중 하나인 ‘샤토 무통 로쉴드(Chateau Mouton Rothschild)’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는 아티스트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와인에 예술적 가치를 더하며 더 나아가서는 브랜드 가치 상승을 통해 최고급 '와인 브랜딩'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번 컬럼에서는 '예술 협업(Artistic Collaboration)'의 성공 사례로 로쉴드 와인 라벨에 대해 얘기해보며 협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색조는 짙은 가넷(garnet·석류석). 오래된 와인의 숙성을 나타내는
오렌지 빛은 아직 테두리에 보이지 않아요… 그러나 제일 먼저
아로마로써 습해오는 것은 카시스 등의 검은 과실의 폭발…
이러한 맛과 향으로 볼 때, 포도의 품종은 특상
카베르네 소비뇽을 중심으로 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죠…

이 와인을 비유한다면 한 장의 명화..
해질녘 하늘에 끝없이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서 신의 목소리를 느끼고는,

조용히 머리를 숙이는 농부 부부를 그린 그 그림은… ‘만종’.”
 

- 와인의 세계를 소재로 한 베스트셀러 <신의 물방울>(원제 ‘神の滴’)이란 만화 속 인물이
‘샤토 무통 로쉴드 1982년'을 음미하며 읊조리는 대목

 

 

 

(위) 샤토 무통 로쉴드 와인 시리즈 

2015년 1월, 글로벌 경매 회사 소더비(Sotheby's)의 홍콩 하우스에서 진행된 경매 행사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빈티지 1945년부터 2012년까지 총 66병의 와인 콜렉션이 무려 48억, 병당 평균 7천2백만원으로 전세계 와인 경매가 중 최고가로 낙찰된 것이다. 경이로울 정도로 고가의 이 와인은 바로 "예술"이라 불리우는 '샤토 무통 로쉴드(Chateau Mouton Rothschild). 로쉴드는  프랑스에 다섯 개 밖에 없는 보르도 지역 최상급(Premier Grand Cru Classe) 중 하나로 1853년부터 이어져 내려온 오랜 전통과 최적의 와인 생산 떼루와로 인해 풍부한 향과 타닌 그리고 적당량의 산도가 있는 고급중에 최고급 와인으로 취급된다.

(위) 프랑스 남서부에 있는 항구 도시 보르도에 위치한 샤토 와인 농장. 무려 14세기부터 소유된 농장이다.

 

 

이와 같이 로쉴드가 최고급 와인으로 인정받는데에는 맛과 품질을 더불어 '라벨링(Labeling)'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자 평화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처칠 수상의 승리의 브이(V)자를 활용한 필립 줄리앙의 작품을 시작으로, 해마다 살바도르 달리(1958년), 호안 미로(1969년), 마르크 샤갈(1970년), 바실리 칸딘스키(1971년), 파블로 피카소(1973년), 앤디 워홀(1975년), 키스 해링(1988년) 등 이름만 들어도 어마어마한 세계 유명 예술가들이 로쉴드 와인 라벨 작업에 참여하였다. 이 덕에 로쉴드는 점점 유명세를 더해갔고 명성을 얻게 된 로쉴드 라벨링은 화가들 사이에서 가장 매혹적인 캔버스로 취급되었다. '우아한 거래'라 불리며 화가들은 작업의 대가로 돈 대신 와인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피카소가 숨을 거두던 해인 1973년에는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피카소의 작품을 라벨에 실음으로써 단순히 와인을 위한 예술이 아닌, "예술을 위한 와인"이란 타이틀까지 붙혀지게 되었다. 

(왼쪽 슬라이드) 1945년부터 2013년까지의 와인 라벨  (클릭)

수많은 라벨 콜렉션에서 한 가지 자랑스럽고도 놀라운 사실은 2013년 와인 라벨 디자이너로 한국인 이우환(Ufan Lee) 작가가 선정 됐다는 것이다.

예술가이자 철학가이기도 한 그는 여러 함축적 의미를 미니멀한 디자인 안에 담으려 노력하였다. 넓은 붓으로 한 획을 쭈욱 그은 것 같아 보이는 이 작품은, 그의 ‘Correspondence(조응)’ 시리즈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검은색 대신 와인색을 사용해 오크통 안에서 와인이 숙성되며 풍미가 풍성해지는 과정을 표현했다. 와인 라벨링은 어느새 로쉴드의 역사깊은 전통이 되어 협업 아티스트가 매번 큰 주목을 받는 만큼, 이우환 작가와의 콜라보레이션은 한국 예술계- 더 나아가서는 와인이 친숙하지 않을 수 있는 일반 대중에게 로쉴드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필자가 이번에 이 주제를 정한 것에도 이우환 작가의 공이 컸으니 말이다.

이렇듯 최근에는 많은 레스토랑이나 기업들이 예술을 접목한 문화마케팅 전략을 경영철학의 기본 원칙으로 삼으며 브랜드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차별화하는데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음식은 단순히 생존 수단으로서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닌, 대중의 가치관 변화에 따라 스토리텔링이라던지 예술을 접목해 감수성을 자극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로쉴드는 마치 이러한 현상을 예견이나 한 듯 문화마케팅을 일찍이 적용해 예술과의 협업 추진을 통해 효과적인 방법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상승시켰고, 의도치 않게 마케팅 효과도 톡톡히 보게 되었다. 1981년에는 세계 곳곳의 박물관에서 "와인 라벨로 보는 명화"라는 제목으로 로쉴드 와인 컬렉션을 전시하는 전시회가 개최되기도 했고, 이우환 작가의 예처럼 매해 어떤 아티스트가 올해의 라벨 디자이너로 선정이 될까에 전세계가 주목하게 됐다. 이와 같이 유형의 상품적 가치만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기엔 한계가 있고 경쟁력이 뒤떨어질 수 있지만, 정서적 교감을 통해서는 무형의 감성적 가치나 추억을 함께 전달해야 차별화 되는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게 흥미로운 포인트이다.

와인병 하나에 이토록 많은 이들이 감동을 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미각과 시각을 자극하는 '예술'이 담겨있고, 예술은 오랜 역사를 담고 있다.
알면 알수록 더 매력 넘치는 명품 와인 ‘샤토 무통 로쉴드’. 필자 역시 죽기 전에 단 한 방울만이라도 맛보는 것이 소원이다.
누구보다 맛있게 마실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Kana Food Story" writes interesting food and art stories from Kana Culinary team.
<카나 푸드 스토리>는 카나 요리팀이 전하는 신비로운 '요리∙예술' 이야기입니다. 

Writer: Yujoon Jang ㅣ 장유준
Editor-in-chief: Yein Kwak ㅣ 곽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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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31, 2015

우리를 닮고 우리를 담다, 오방색五方色 

Food Plating

음식을 단순히 맛으로만 즐기는 시대는 가고, 화려한 색감과 플레이팅으로 '시각'을 자극하며, "보글보글 지글지글" '청각'도 동시에 자극하는 쿡방(Cook+방송)이 대세인 시대가 왔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옛말처럼 정갈하게 담은 음식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심리적으로 더 맛있게 느껴지는 법. 아름다운 색감을 이용한 요리를 보는 순간, 터져나오는 탄성과 함께 너도나도 할 것없이 카메라에 담아 SNS에 올리는 모습은 우리에겐 전혀 낯설지 않다. 요리에도 '예술적 감각'이 중요해진 요즘— 예로부터 한국 전통미술은 물론 생활방식까지 다방면에 두루 쓰인 우리의 색, 오방색五方色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주와 자연 그리고 사람이 하나 되어 살고자 했던 선조들의 세계관"

 

오방색은 음양오행적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다섯 가지 색으로 우리나라의 민족사상, 한의학, 전통공예, 전통복식, 건축물은 물론 '음식'에도 영향을 끼쳐 한국인의 삶과 굉장히 밀접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청(靑)•적(赤)•백(白)•흑(黑)•황(黃) 다섯 가지 색으로 이뤄진 오방색은 각기 오행(청-木, 적-火, 백-金, 흑-水, 황-土), 방위(청-東, 적-西, 백-南, 흑-北, 황-中), 계절(청-봄, 적-여름, 백-가을, 흑-겨울, 황-사계절) 그리고 오장육부(청-간장, 적-심장, 백-폐, 흑-신장, 황-위)를 상징한다. 이 외에도 각 색깔마다 지니고 있는 상징성과 각 식재료의 효능이 뚜렷하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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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생명, 신생, 소원, 창조를 상징한다.
엽록소가 많이 들어있는 푸른 잎 채소는 우리 신체 중 간, 장 그리고 눈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 세포 재생을 도와 노화 예방에 도움이 된다.

 

 

붉은색태양, 탄생, 정열, 애정을 상징한다.
붉은색 색소 리코펜이나 베타카로틴이 들어있는 토마토와 홍고추는 심장을 튼튼하게 해주며
피를 맑게 해준다. 또한 예로부터 빨간 빛깔은 마귀나 나쁜 재앙을 강하게 물리칠 수 있다고 믿어,
동지날에 붉은 팥죽을 끓여 먹는 풍습이 생겼다.



 

흰색진실, 순결, 자연을 상징한다.
플라보노이드 색소가 주로 함유된 대표 식재료 양파, 무, 도라지는 체내 저항력을 높여주며
폐와 코 기능을 향상시켜줌으로써 기관지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 예로부터 흰색은
나쁜 기운을 막고 우리 몸에 활력을 가져다 준다고 믿어, 우리 선조들은 백의민족이라
불릴 만큼 흰 옷을 즐겨 입었다. 더 나아가,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서
흰 옷을 입혔고, 백일상에는 아기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백설기가 빠질 수 없었다.

 

 

검정색지혜, 죽음(소생)을 상징한다.
안토시아닌 색소가 풍부한 검정콩, 흑미, 미역은 체내 독소를 제거해 신장 기능을 강화시켜
피로 회복과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죽음이 마치 낙엽이 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가
완전히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봄에 새싹을 다시 피우는 것처럼
소생을 뜻하며 동시에 만물의 흐름과 변화를 뜻한다.

 

 

 

노란색은 모든 사계절을 상징하고, 중앙을 나타내는 색이다.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함유된 호박, 당근, 오렌지는 식욕을 촉진하고 소화 기능에 도움을 줘
위 기능을 좋게 해준다. 노란색은 우주의 중심이라고도 하여 예로부터 왕의 옷을 만드는 고귀한 색으로 취급되어 왔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오방색의 각기 다른 식재료를 한 음식에 모두 담아 섭취하곤 했는데, 각 재료가 갖고 있는 색소에 따라 효능과 영양소가 다르므로, 영양학에 대한 지식이 없던 과거에도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는 것이 가능했다. 또한, 오방색의 음양오행적 사상으로 인해 식재료 간의 음양 조화를 중요시 여기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우리나라 고유 음식문화가 생겨났다. 이는 우리의 식문화가 세계 어느 나라의 식문화와 비교했을 때도 유일무이하게 하는 아주 절대적인 요소이다.

 

Korea Pavilion at the Expo Milano 2015

지난 5월부터 10월 31일까지 184일간 145개국이 참가해, ‘지구 식량 공급, 생명의 에너지(Feeding the Planet, Energy for Life)’를 주제로 열린 세계박람회 ‘2015 밀라노엑스포(World Exposition Milano 2015, Italy)'에서 한국관은 "수많은 체험관 중 가장 돋보이는 관"으로 호평을 받으며, "한국의 맛과 멋을"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영상)

오방색을 기초로 구성된 한식 밥상 메뉴는 조화(Harmony), 치유(Healing), 장수(Health)라는 테마로 선보여지며, 색의 조화와 한식의 정갈하면서도 절제된 미(美)를 잘 나타내주었다.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영양학적으로 균형 잡힌 한국의 건강 밥상은 세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한 그릇의 소박한 먹거리에,

아이의 순수한 옷차림에,

민족의 삶에 스며든 

다섯 빛깔 전통색"

-  KBS 한국 방송 [한국의 유산 162회 '오방색']

오방색을 잘 활용한 대표 한식 메뉴로는 역시 비빔밥을 꼽을 수 있다. 비빔밥은 황(노른자)을 중심으로 청(시금치), 적(당근, 고추장), 백(콩나물, 백지단), 흑(고사리, 고기, 황지단)색의 고명을 얹어 이를 함께 비벼 먹음으로써 모든 재료가 하나의 음식으로 조화되는 음식이다. 또 다른 대표적인 예로, 궁중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신선로[청(은행, 미나리적, 파), 적(간전, 홍고추, 소고기완자), 백(백지단, 동태전), 흑(석이버섯, 표고전, 해삼전), 황(호두, 잣, 황지단)] 그리고 완전함•화합의 의미가 있는 구절판[청(오이), 적(당근, 소고기), 백(밀전병, 숙주, 백지단), 흑(석이버섯, 표고버섯), 황(호두, 잣, 황지단)]이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탕평채, 호박전, 산적, 송편 그리고 메밀국수와 같이 많은 한식이 오방색을 갖추고 있다.

오방색은 각기 다른 색마다 다양한 함축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어느 하나에 쏠리지 않고 모든 색상이 균형 있게 어우러져 음양의 조화와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 해준다. 이제는 단순히 입으로만 먹는 시대가 아닌, 오감을 모두 충족해 예술적으로 대중에게 어필해야 인정 받는 시대이다. '색'을 활용한 적극적인 ‘시각’ 활용이 답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오방색을 모두 갖춘 한식은 큰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음식의 가장 본질인 맛은 물론, 감각적인 부분까지 결합시켜 한식을 예술적•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홍보한다면, '한식의 세계화에 보다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Kana Food Story" writes interesting food and art stories from Kana Culinary team.
<카나 푸드 스토리>는 카나 요리팀이 전하는 신비로운 '요리∙예술' 이야기입니다. 

Writers: Yujoon Jang ㅣ 장유준 <yujoon.kana@gmail.com>,  Sally Leeㅣ 이승현 <slee92.kana@gmail.com>, Yeji Limㅣ 임예지 <yeji.kana@gmail.com>, Michelle Leeㅣ 이성희 <sunghee.kana@gmail.com>, Seungkyu Moonㅣ 문승규 <seungkyu.kana@gmail.com>, Sanghoon Jeongㅣ 정인수 <insu.kana@gmail.com>,

Editor-in-chief: Yein Kwak ㅣ 곽예인 <yein.ka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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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8, 2015

“요리, 그릇 그리고 공간연출이 주는 오감만족”
예술가 로산진의 솔직 담백한 요리철학

20세기 초 일본에 새로운 형식의 식당이 나타났다. 색과 향이 다채롭고 여러 가지 요리들로 가득 채운 식탁만이 훌륭한 한 끼를 만든다는 통념을 멋지게 깬 ‘호시가오카사료’. 이곳은 하루에 오직 하나의 요리로 식도락가들의 오감을 충족시키는 식당이었다. 한 끼에 무려 35만 원을 받았지만, 인파가 몰려드는 바람에 회원제로 운영해야 했다. 회원이라고 해도 언제나 식당을 이용하는 것을 보장받을 순 없다. 하루 스무 그룹으로 이용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황족, 귀족, 정-재계인사 등 일본을 이끄는 명사들뿐만 아니라 스키샤나 예술가 등 '멋과 맛'을 높게 사는 인물들이 모이는 당대 최고의 사교 장소였다. “일본의 미래는 호시가오사료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하지만 이곳의 음식은 이용하는 사람들의 신분과는 다르게 화려하지 않았다.

(1) 호시가오카사료 내부 전경
(오2) 호시가오카사료에 모인 당시 정계인사들

이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조리장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 1883-1959)’의 요리 철학에서 비롯됐다. 그는 “미식의 본질은 맛있게 만드는 솜씨가 아니라 맛이 있을 수밖에 없게 하는 식재료다” 라고 설파했다. 맛있는 요리는 무조건 모든 재료가 신선하고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어야 한다고 그는 굳게 믿었다. 하지만 로산진의 독특한 철학을 사람들이 이해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비싼 음식값에 비해 양이 적고 단조로워 돈과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느냐는 회의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심은 통한다는 말이 틀림없는 듯하다. 그의 도전을 실패로 여겼던 식도락가들은 점차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그가 계속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두 번째 식당 개업을 도왔다. 

"완벽한 재료를 찾아낸다면 맛을 내기 위해 복잡한 기교를 부릴 필요가 없다.
재료가 지닌 솔직한 맛을 끌어내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릇에 담아내면 그만이다."

로산진의 음식에는 그의 생각이 배어 있었다. 먹는 이에 대한 이해와 배려, 그리고 그만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해석. 로산진은 손님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철저히 분석했다. 손님의 취향에 맞게 최고의 재료를 구하고, 그에 걸맞은 식기를 직접 만들어 음식을 담아내고 식당 공간과 분위기를 음식에 맞도록 연출했다. 그에게 요리는 예술작품의 한 요소였다.
요리 속 재료 하나하나가 본래 맛을 완벽히 발휘해야 하고, 여기에 재료의 생기를 북돋워 주는 알맞은 그릇이 어우러져 하나의 완벽한 예술작품을 완성한다. 손님은 이 요리를 준비된 공간
안에서 온전히 만끽할 수 있도록 대접을 받는다. 온몸의 모든 감각이 하나의 요리작품을 감상하는 순간이다.

슬라이드 속 로산진의 명작들을 하나씩 천천히 감상해보는 것을 권장한다.  

'아름다운 욕심쟁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로산진은 서각·그림·도예·서도·칠기 등 여러 방면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으며 자신의 예술을 요리·미식과 결합한 '멀티 아티스트'였다.
만화 <맛의 달인> 유잔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그는 30대 때 일본 전역 돌며 식객 생활을 했으며 재료 선택과 요리는 물론 요리에 어울리는 그릇까지 직접 만들었다. 도자기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과 중국을 찾기도 했다.

투명하고 깨끗한 요리를 통해 로산진의 마음이 온전하게 전해진다. 그릇에서 나오는 에너지와 재료의 순수한 힘이 손님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로산진의 식당은 불순한 기운(?)이 조금이라도 감돌 여지가 없다. 게이샤가 손님을 접대한다든가 여종업원이 술을 내는 일은 일절 허용되지 않고 오직 요리 자체에 집중하도록 했다. 음식을 대하는 로산진의 자세는 순수하고 깨끗하다. 그는 언제나 요리에서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요소는 "인간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라고 한다. 다른 것은 빠져도 상관없지만, 진심이 빠진다면 그것은 요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요리와 어울리는 그릇,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공간연출, 음식을 즐기는 타이밍 등 모든 요소가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어 준다. 단순히 음식만을 섭취하는 게 아니라 음식과 그에
어울리는 접시, 공간 등 관련된 여러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 시너지 효과를 내고 먹는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요리가 완성되는 것
이다.


“내 삶의 방식은 나밖에 모른다. 그것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동정도 받고 싶지 않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의 삶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내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100년 후의 친구들이다. 모두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단 한 가지는, 로산진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데 만들려고 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만족한다.” 
- ‘로산진 평전’ 192쪽


로산진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의 이러한 곧은 정신이 일본요리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토대가 됐다고 많은 전문가는 평가한다. “요리와 상차림은 단정해야 한다”는 *모리스케와 다도로부터 온 고급 *가이세키 정신이 격식 있는 요리문화로 발전한 것에 로산진의 역할이 컸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모리스케: 요리를 알맞은 그릇과 공간에 차려낸 멋; 차림멋. *가이세키: 본래 다도에서 차를 마시기 전에 내는 대접 요리로 손님의 배를 적당히 채워 차의 맛을 돋운다. 최상의 재료로 한 간소하고 정갈한 요리가 특징으로 차와 함께 심신을 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로산진의 명성은 점차 당대 예술 거장들에게까지 전해져 '예술가가 사랑하는 예술가'라고 불리게 된다. 1951년,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한 ‘현대 일본 도예전’에 참여했는데 피카소가 그의 예술적 감각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일화로 로산진의 그릇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 왔는데 그중 한 사람이 찰리 채플린이었다.

(왼1) - 피카소(Pablo Picasso)와 로산진 
(왼2) - 로산진과 샤갈(Marc Chagall)
(왼3) - 제이비 블렁크(J.B Blunk), 로산진,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이미지 출처: 로산진, 요리의 길을 묻다> 

(영상) <L'art de Rosanjin> Exhibition

화려한 업적을 남기고 1959년 세상을 떠난 로산진, 더는 그의 요리를 맛볼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으로 우리는 그를 만나 수 있다. 뉴욕 모마(MOMA)와 같은 세계적인 박물관에는 그가 사용했던 식기구들이 전시돼 요리에 대한 그의 사랑과 집념 그리고 예술적 감각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지난 3월 도쿄에서 열린 먹는 아트전 <L’art de Rosanjin>에서는, 기발하고 독특한 전시물을 통해 현대 일식에 끼친 로산진의 영향과 그의 *모리스케(차림 멋) 정신을 생동감 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해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진심과 친절을 다해 품격을 높여라. 요리에 드러나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음식의 맛을 논하기 이전에 '요리하는 자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에 집중하며, '멋과 맛'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그의 솔직한 마음가짐. 요리를 예술로, 예술로 인생을 돌아보았던 그의 요리 미학은 전 세계 수많은 요리인들에게 소중한 교훈으로 자리 잡아 영원히 되새겨지고 있다.



"Kana Food Story" writes interesting food and art stories from Kana Culinary team.
<카나 푸드 스토리>는 카나 요리팀이 전하는 신비로운 '요리∙예술' 이야기입니다. 

Writers: Sera Park ㅣ 박세영 <seyoung.kana@gmail.com>,  Gyeongseok Ha ㅣ 하경석 <gyeongseok.kana@gmail.com>, Sally Leeㅣ 이승현 <slee92.kana@gmail.com>

Editor-in-chief: Yein Kwak ㅣ 곽예인 <yein.ka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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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6, 2015

Vincent van Gogh and Absinthe
고흐와 '초록 요정' 압생트의 신비로운 푸드(Food) 스토리 

The expression through Gogh’s arts is stunning; audiences remain speechless in front of his art. Gogh’s signature style of depicting nature with warmth, strength and chaos at the same time is shown through some the famous works of Gogh like “Still Life: Vase with Twelve Sunflowers”, “The Café Terrace on the Place du Forum, Arles, at Night”, and “La nuit etoilee, Arles”. But these portrayals of vivid sunlight, divine starlight, and sparkling reflection of sky on the water make us come up with the question, “Why did Vincent Van Gogh decide to take his own life, when he could see this world with such a beautiful point of view?” There have been various attempts to understand Gogh, but we are trying to focus on Absinthe, also known as the mysterious Green Fairy.

빛의 따스함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고흐의 ‘해바라기’,  별빛보다 아름다운 ‘밤의 카페 테라스’,  물에 비치는 반짝이는 하늘을 담은듯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그렇다-- 고흐의 그림들은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이 깊고 뜨거운 감동을 자아낸다.  하지만 유난히 우울하고도 차가웠던 삶 속에서 그는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낸 것일까- 아마도 작품에서만큼은 그는 이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처럼 누구도 보지 못한 특별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던 그가 왜 서른일곱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것일까? 이번 이야기의 제목 속 '초록요정'- 압생트는 이러한 측면에서 주목받는다.

ABSINTHE.jpg

What is Absinthe, then? It is a very high proof alcohol, which includes wormwood, apricot seed, fennel and anise. In 10th century, it was easy to access this beautiful flowery, herb-scented drink in affordable prices especially in France and Switzerland. Thus, it becomes reasonable why bankrupt artists often found Absinthe a good company. Besides Gogh, many well-known artists such as Edgar Degas, Édouard Manet, and Ernest Hemingway got inspirations from Absinthe.

향쑥, 살구씨, 회향, 아니스를 향료로 쓴 압생트는 무려 45~70도에 이르는 굉장한 독주다.  알코올 함유량이 70%가 넘을 만큼 독하기 때문에 마시려면 독특한 절차가 필요하다. 압생트를 따른 술잔위에 압생트스푼(구멍이뚫린긴숟가락)을 걸쳐놓고 각설탕을 올린 후 천천히 물을 부어 설탕을 녹이면서 물과 함께 희석(보통 1:1)해 마시는 것이다. 설탕과 물을 넣으면 초록색이던 압생트는 하얗게 변하고, 쌉싸래한 술과 달콤한 설탕이 어우러져 절묘한 여운을 전해준다고 한다. 19세기 당시, 프랑스와 스위스에선  허브와 꽃향기가 감도는 이 아름다운 초록 빛깔 술을 값싼 가격에 마실 수 있었다. 독해서 지독하게 매력적인 술, 압생트는 가난한 예술가들에게는 위로를 주는 좋은 친구이기도 했다. 고흐를 포함하여 드가, 마네, 헤밍웨이 등 당대 명망 높은 예술가들과 문학가들도 압생트를 마시며 '예술적 영감'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Absinthe Effect]
Absinthe is known to have a hallucination effect that influences one’s sight to be blurry and distorted. Also, sometimes the yellow spot phenomenon, which makes everything seem yellow, follows. The descriptions of Absinthe Effect directly speak to Gogh’s usage of color and brush techniques.

[압생트 환각효과]
사물을 여러 가지로 보이게 하고 구부러져 지고 흐릿하게 보이게 한다. 더해서 전반적으로 노랗게 보이게 하는 황반 현상을 준다. 대체로 고흐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그 만의 기법, 색감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This extraordinary magical effect of Absinthe fascinated Gogh. We can only guess how he had a strong affection towards Absinthe from his frequent usage of emerald, which is the color of Absinthe. Furthermore, Gogh’s usage of greenish yellow color and strong brushstrokes remind the audiences of yellow spot phenomenon and hallucination effect that comes from Absinthe. This extraordinary magical effect of Absinthe fascinated Gogh. We can only guess how he had a strong affection towards Absinthe from his frequent usage of emerald, which is the color of Absinthe. Furthermore, Gogh’s usage of greenish yellow color and strong brushstrokes remind the audiences of yellow spot phenomenon and hallucination effect that comes from Absinthe.

압생트의 묘한 마술 효과는 고흐를 가차없이 매혹했다.
고흐는 압생트의 색인 에메랄드색을 유난히 즐겨 사용하는데 여기서 그의 압생트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압생트의 환각효과와 황반 현상은 그림에 전반적인 녹황색을 띄며 생기가 넘치는 고흐만의 '임파스토' 채색 기법을 탄생시킨다. 이러한 색과 기교는 보는 이들을 몽롱하게 하면서 동시에 안정감을 준다. 마치 서늘한 바람이 부는 초여름, 푸릇푸릇한 산에서 발견한 야생화가 주는 것 같은 생동감은 이로 말할 수 없는 짜릿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런 수많은 명작들을 탄생시킨 본인은 정작 너무나도 어두운 삶을 살았다. 대표적인 일화로, 어느 날 친한 친구 고갱과 다툰 후 급격한 감정 기복으로 인해 자신의 귀를 자르게 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심각한 
압생트 중독으로 정신분열이 생겨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한다.

Vincent_van_Gogh_(1853-1890)_-_Wheat_Field_with_Crows_(1890).jpg

From Gogh’s last work, “Wheatfield with Crows”(1890), the audiences can assume his sadness and depression. We can see strong essence of colors of Absinthe here, as well. Was Absinthe, the mysterious green fairy, a blessing that birthed Gogh’s beautiful art? Or was it a curse that took his life? Only Vincent Van Gogh will know.

고흐의 마지막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 7월).
그는 슬픔과 비애가 묻어나는 기법을 선보이며 자살을 예고한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압생트를 나타내는 초록색과 황색을 주되게 사용하였다.

격변의 시대의 가난한 예술가의 술이자 서민의 술로, 고흐의 지난한 마음을 달래고 어루만져준 것은 오직 압생트 한 병뿐이었다.
남들은 볼 수 없었던 빛의 향연을 즐기며 많은 이에게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감동의 명작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그에게 초록요정의 '축복'이 함께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고흐가 사랑한 이 초록요정은 고흐에게 예술적 영감을 준 대신, 먼 훗날 그를 비극적인 죽음에 이르게 하는데.. 우연인지 운명인지 알 수 없는 고흐와 압생트의 관계.

"천재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 그에게 압생트는 과연 약이었을까, 독이었을까."







"Kana Food Story" writes interesting food and art stories from Kana Culinary team.
<카나 푸드 스토리>는 카나 요리팀이 전하는 신비로운 '요리∙예술' 이야기입니다. 다음 스토리도 많은 기대 바랍니다.

Writers: Sera Park(박세영) <sera.kana@gmail.com>, Joshua Cho(조경욱) <kyungwook.kana@gmail.com>, Sungsu Cho(조성수) <sungsu.kana@gmail.com>, Mansoo Chung(정만수) <mansoo.kana@gmail.com>, 하승욱(Seungwook Ha) <seungwook.kana@gmail.com> 

Eng Translation (영문 번역): Yoo Jin Lee(이유진) <yoojin.kana@gmail.com>, Sally Lee(이승현) <slee.kana@gmail.com>

Editor-in-chief: Yein Kwak(곽예인) <yein.ka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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