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8, 2015

“요리, 그릇 그리고 공간연출이 주는 오감만족”
예술가 로산진의 솔직 담백한 요리철학

20세기 초 일본에 새로운 형식의 식당이 나타났다. 색과 향이 다채롭고 여러 가지 요리들로 가득 채운 식탁만이 훌륭한 한 끼를 만든다는 통념을 멋지게 깬 ‘호시가오카사료’. 이곳은 하루에 오직 하나의 요리로 식도락가들의 오감을 충족시키는 식당이었다. 한 끼에 무려 35만 원을 받았지만, 인파가 몰려드는 바람에 회원제로 운영해야 했다. 회원이라고 해도 언제나 식당을 이용하는 것을 보장받을 순 없다. 하루 스무 그룹으로 이용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황족, 귀족, 정-재계인사 등 일본을 이끄는 명사들뿐만 아니라 스키샤나 예술가 등 '멋과 맛'을 높게 사는 인물들이 모이는 당대 최고의 사교 장소였다. “일본의 미래는 호시가오사료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하지만 이곳의 음식은 이용하는 사람들의 신분과는 다르게 화려하지 않았다.

(1) 호시가오카사료 내부 전경
(오2) 호시가오카사료에 모인 당시 정계인사들

이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조리장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 1883-1959)’의 요리 철학에서 비롯됐다. 그는 “미식의 본질은 맛있게 만드는 솜씨가 아니라 맛이 있을 수밖에 없게 하는 식재료다” 라고 설파했다. 맛있는 요리는 무조건 모든 재료가 신선하고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어야 한다고 그는 굳게 믿었다. 하지만 로산진의 독특한 철학을 사람들이 이해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비싼 음식값에 비해 양이 적고 단조로워 돈과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느냐는 회의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심은 통한다는 말이 틀림없는 듯하다. 그의 도전을 실패로 여겼던 식도락가들은 점차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그가 계속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두 번째 식당 개업을 도왔다. 

"완벽한 재료를 찾아낸다면 맛을 내기 위해 복잡한 기교를 부릴 필요가 없다.
재료가 지닌 솔직한 맛을 끌어내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릇에 담아내면 그만이다."

로산진의 음식에는 그의 생각이 배어 있었다. 먹는 이에 대한 이해와 배려, 그리고 그만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해석. 로산진은 손님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철저히 분석했다. 손님의 취향에 맞게 최고의 재료를 구하고, 그에 걸맞은 식기를 직접 만들어 음식을 담아내고 식당 공간과 분위기를 음식에 맞도록 연출했다. 그에게 요리는 예술작품의 한 요소였다.
요리 속 재료 하나하나가 본래 맛을 완벽히 발휘해야 하고, 여기에 재료의 생기를 북돋워 주는 알맞은 그릇이 어우러져 하나의 완벽한 예술작품을 완성한다. 손님은 이 요리를 준비된 공간
안에서 온전히 만끽할 수 있도록 대접을 받는다. 온몸의 모든 감각이 하나의 요리작품을 감상하는 순간이다.

슬라이드 속 로산진의 명작들을 하나씩 천천히 감상해보는 것을 권장한다.  

'아름다운 욕심쟁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로산진은 서각·그림·도예·서도·칠기 등 여러 방면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으며 자신의 예술을 요리·미식과 결합한 '멀티 아티스트'였다.
만화 <맛의 달인> 유잔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그는 30대 때 일본 전역 돌며 식객 생활을 했으며 재료 선택과 요리는 물론 요리에 어울리는 그릇까지 직접 만들었다. 도자기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과 중국을 찾기도 했다.

투명하고 깨끗한 요리를 통해 로산진의 마음이 온전하게 전해진다. 그릇에서 나오는 에너지와 재료의 순수한 힘이 손님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로산진의 식당은 불순한 기운(?)이 조금이라도 감돌 여지가 없다. 게이샤가 손님을 접대한다든가 여종업원이 술을 내는 일은 일절 허용되지 않고 오직 요리 자체에 집중하도록 했다. 음식을 대하는 로산진의 자세는 순수하고 깨끗하다. 그는 언제나 요리에서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요소는 "인간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라고 한다. 다른 것은 빠져도 상관없지만, 진심이 빠진다면 그것은 요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요리와 어울리는 그릇,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공간연출, 음식을 즐기는 타이밍 등 모든 요소가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어 준다. 단순히 음식만을 섭취하는 게 아니라 음식과 그에
어울리는 접시, 공간 등 관련된 여러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 시너지 효과를 내고 먹는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요리가 완성되는 것
이다.


“내 삶의 방식은 나밖에 모른다. 그것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동정도 받고 싶지 않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의 삶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내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100년 후의 친구들이다. 모두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단 한 가지는, 로산진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데 만들려고 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만족한다.” 
- ‘로산진 평전’ 192쪽


로산진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의 이러한 곧은 정신이 일본요리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토대가 됐다고 많은 전문가는 평가한다. “요리와 상차림은 단정해야 한다”는 *모리스케와 다도로부터 온 고급 *가이세키 정신이 격식 있는 요리문화로 발전한 것에 로산진의 역할이 컸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모리스케: 요리를 알맞은 그릇과 공간에 차려낸 멋; 차림멋. *가이세키: 본래 다도에서 차를 마시기 전에 내는 대접 요리로 손님의 배를 적당히 채워 차의 맛을 돋운다. 최상의 재료로 한 간소하고 정갈한 요리가 특징으로 차와 함께 심신을 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로산진의 명성은 점차 당대 예술 거장들에게까지 전해져 '예술가가 사랑하는 예술가'라고 불리게 된다. 1951년,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한 ‘현대 일본 도예전’에 참여했는데 피카소가 그의 예술적 감각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일화로 로산진의 그릇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 왔는데 그중 한 사람이 찰리 채플린이었다.

(왼1) - 피카소(Pablo Picasso)와 로산진 
(왼2) - 로산진과 샤갈(Marc Chagall)
(왼3) - 제이비 블렁크(J.B Blunk), 로산진,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이미지 출처: 로산진, 요리의 길을 묻다> 

(영상) <L'art de Rosanjin> Exhibition

화려한 업적을 남기고 1959년 세상을 떠난 로산진, 더는 그의 요리를 맛볼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으로 우리는 그를 만나 수 있다. 뉴욕 모마(MOMA)와 같은 세계적인 박물관에는 그가 사용했던 식기구들이 전시돼 요리에 대한 그의 사랑과 집념 그리고 예술적 감각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지난 3월 도쿄에서 열린 먹는 아트전 <L’art de Rosanjin>에서는, 기발하고 독특한 전시물을 통해 현대 일식에 끼친 로산진의 영향과 그의 *모리스케(차림 멋) 정신을 생동감 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해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진심과 친절을 다해 품격을 높여라. 요리에 드러나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음식의 맛을 논하기 이전에 '요리하는 자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에 집중하며, '멋과 맛'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그의 솔직한 마음가짐. 요리를 예술로, 예술로 인생을 돌아보았던 그의 요리 미학은 전 세계 수많은 요리인들에게 소중한 교훈으로 자리 잡아 영원히 되새겨지고 있다.



"Kana Food Story" writes interesting food and art stories from Kana Culinary team.
<카나 푸드 스토리>는 카나 요리팀이 전하는 신비로운 '요리∙예술' 이야기입니다. 

Writers: Sera Park ㅣ 박세영 <seyoung.kana@gmail.com>,  Gyeongseok Ha ㅣ 하경석 <gyeongseok.kana@gmail.com>, Sally Leeㅣ 이승현 <slee92.kana@gmail.com>

Editor-in-chief: Yein Kwak ㅣ 곽예인 <yein.ka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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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KA NA